이능세 (조선귀족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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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이능세(李能世, 1883년 9월 21일 ~ 1948년 1월 15일)는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, 본관은 전의(全義)이며 본적은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입니다. 아버지는 도승지와 형조판서를 지내고 한일합병 후 남작 작위를 받은 이정로(李正魯)입니다.
생애 및 활동:
- 1903년 온릉 참봉, 1906년 가례도감 감조관 등을 역임했습니다.
-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후, 아버지 이정로가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습니다.
- 1923년 아버지 이정로가 사망하자 남작 작위를 세습받았으며, 이 작위는 1945년 광복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.
- 작위 세습 이전인 1914년 종5위에 서위되었고, 1915년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고양협찬회 위원을 맡았습니다.
- 일제로부터 다이쇼 대례기념장(1915년), 쇼와 대례기념장(1928년), 일본기원 2600년 축전기념장(1940년) 등을 받았습니다.
- 1941년에는 정4위에 서위되었습니다.
- 주식회사 홍성상업(洪城商事)의 대주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.
- 장락국민학교(현 미원초등학교 장락분교) 대지를 무상으로 기증하는 등 교육사업에 관심을 보였습니다.
사망 및 묘소:
- 1948년 1월 15일에 사망했습니다.
-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에 있습니다.
친일 행적:이능세는 아버지 이정로와 함께 친일파 708인 명단,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,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. 그의 작위 세습과 친일 행적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되었으며, 친일재산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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